Week 4

많은 이들은 변화를 원합니다. 자신이 용기 있는 사람이길 바랍니다. 그러면서도 신중하고 싶다는 말로 게으름을 포장할 때가 있습니다.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습니다. 새로운 도전을 섣부른 판단으로 그르칠까 두려워 한 박자 늦춰 신중하게 생각합니다. 게으름은 한 박자가 아닌 열 박자 늦춰질 때입니다. 이렇게 흘러간 시간은 내가 무얼 하려고 했는지 흐릿하게 하고, 때로는 그 시간만큼 내가 공을 들였다고 착각하게 해서 준비 없는 완성작을 기대하게 합니다. 그러다 결국 ‘지금 시도하면 안 되는 이유’를 머릿속에 나열합니다.

행동하지 않은 시간은 게으름에 익숙하게 합니다. 아마도 이 게으름은 간절함과 지금 이대로가 편한 안정감에 닿아있을 겁니다. 변화를 원한다고 하지만 지금의 안락을 굳이 나 스스로 균열 내고 왜 휘저어야 하는가에 대해 자신을 설득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저 흔한 감탄사를 내뱉듯 나도 변화를 원한다고 말만 했던 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모험은 위험한 것이다. 어째서인가? 모험을 하면 잃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모험하지 않는 것, 그것이 현명하다. 그러나 모험을 하지 않으면 자기 자신을 잃는다. 모험을 했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결코 잃어버리는 일이 없었을 자기 자신을, 마치 아무것도 아닌 양 너무도 쉽게 잃는다.]

– 키에르 케고르 S.Kierkegaard [죽음에 이르는 병] 중에서.

2년 전 여름에 멈춰있는 노트 한 권이 있습니다. 더 많은 자료 조사를 해야지 하고는 다시 펴지 않았습니다. 신중하고 싶다는 핑계를 되며 더 쉽고 편한 일에 시간을 쏟았습니다. 오늘부터 다시 빈 페이지를 채워볼까 합니다. 조금 더 움직이고, 불편을 감수해야 그리고 이제 그만 신중해야 새로운 챕터로 넘어갈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