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31

숨 막히는 무더위가 계속되는 여름 한 가운데를 집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여름휴가의 호사는 없습니다. 계절과 상관없이 두꺼운 이불을 둘둘 말고 자는 가족들을 위해 이불 빨래를 하고, 책장에서 책들을 몽땅 꺼내어 바람을 쐬어 주고는 다시 다른 칸에 꽂습니다. 오래된 집 나무 바닥에 스며든 습기를 날리기 위해 보일러를 잠깐 켜놓고 냉장고에서 복숭아를 꺼냅니다. 차가운 물에 딱딱한 복숭아의 솜털을 씻어내고 대충 잘라 올리브유와 소금으로 버무리면 아삭한 식감이 여름 별미입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정원에는 짙은 초록 사이에 여름을 대표하는 백일홍이 강렬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며칠 전 매섭게 내린 장맛비에 꽃잎들이 가득 땅에 떨어졌지만, 그래도 아직은 흐드러지게 핀 백일홍이 그림 같습니다. 아직 여물지 않은 밤송이가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하는 걸 보니, 초록 가시 밤송이가 머리 위로 떨어질까 조마조마했던 작년 여름 기억이 납니다. 정해진 시간대로 자라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시들어가는, 그렇게 분주하고 전력을 다해 일 년을 살아내는 나무들. 그리고 늘 풍성한 모습으로 묵직하게 정원을 지키는 소나무의 어우러짐은 반드시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하루하루를 충만하게 살아가는 삶의 예술을 떠올리게 합니다. 수고를 게을리하지 않되, 서두르지 않는 것. 때가 되면 변화할 테니 지금은 오늘의 여름을 만끽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