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12

도대체 몇 층일지 가늠이 안 되는 고층 빌딩 사이에 서서 고개를 한껏 뒤로 젖혀 주변을 둘러볼 때. 빌딩 숲 가장 높은 옥상에서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의 바람에 머리를 휘날리며 작은 점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내려다볼 때. 무얼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 도시의 기억은 다릅니다. 땅에 발을 딛고 서 있으면 빌딩에 압도되다가 이곳에 거주하는 이들 중 한 명처럼 자연스럽게 흡수되는 기분이기도 하고, 맨 꼭대기 층의 뻥 뚫린 시야는 해방감으로 일상에서 탈출한 듯합니다. 기억은 보이는 것만 아니라 골목에서 우연히 맡은 커피 향 같은 후각으로, 또는 얼떨결에 손가락 끝을 스쳤던 콘크리트 벽의 차갑고 거친 촉각으로, 혹은 늦은 밤 잠을 깨운 사이렌 소리, 아침 창밖의 새소리 등이 귓가에 남습니다. 그동안 내 삶에 쌓인 각기 다른 경험과 내가 유독 강하게 반응하는 감각세포가 나만의 주관을 만들어 기억을 만들고 저장합니다. 한 번 새겨지면 영원하나요.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한 번의 경험. 그리고 서너 번 반복된 경험은 보이는 것들 사이사이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게 하고, 마주칠수록 달라지는 경험에 그 도시에 대해 섣불리 설명하려 들지도, 한 마디로 단언하려 하지도 않습니다. 내가 본 것들은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도시의 아주 작은 일부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가끔 지난날을 회상하면서 멋쩍은 웃음을 보이며, 숨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내가 봤던 것이 전부인 듯 이야기했던 미숙한 시절이 떠올라서입니다. 과거를 떠올리며 후회도 하고, 다양한 감정이 나를 거쳐 가면서 지금이 흘러갑니다. 경험과 시간의 축적은 보이지 않는 것 너머를 볼 수 있고,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하는 태도를 만듭니다. 하나 더하자면, 내가 이해하기 힘들어도 그럴 수 있겠다고 하며 놓을 수 있는 마음. 다름을 알게 될수록 내가 편해집니다.

곧은 노櫓도 물 안에서는 굽어져 보인다. 우리가 무언가를 본다는 사실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도 중요하다.

Michel Eyquem de Montaigne

참고 자료:

수상록. Michel Eyquem de Montaigne 지음. 안해린 편역. 소울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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