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51

‘곧 착륙하겠습니다.’
승무원의 안내에 기지개를 켜 경직됐던 근육을 깨웁니다. 열네 시간여 만에 도착한 낯선 도시 호텔 방에 들어와 깨끗하게 정리된 침대에 앉아 안도합니다. 내일 아침은 이른 기상도, 출근도 없습니다. 해야 할 일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이 가장 마음에 듭니다. 배가 고프면 먹고, 걷고 싶으면 걷고, 자고 싶으면 자면 되는 느릿한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는 성탄절을 앞두고 도시 전체가 들썩입니다. 대부분이 도시를 방문한 사람들이니 여행의 설렘을 마음껏 표출할 수 있습니다. 낯선 도시 속 이방인은 뜻밖의 우연이 만들어내는 사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미리 준비한 넉넉한 마음은 수조에 물을 채우듯 낯선 곳에서 보고 듣는 모든 것들이 차오르게 합니다.

경험하지 않은 도시를 거닐 때의 설렘과 약간의 긴장감, 일상에서 벗어난 정서적 환기는 여행의 큰 기쁨입니다. 제게는 하나 더 기다리는 은밀한 기쁨의 순간이 있습니다. 동행인이 잠든 사이, 욕조에 둥지를 틀 때입니다. 욕조의 딱딱한 바닥에 엉덩이가 배기지 않게 커다란 수건을 여러 겹 포개어 푹신한 상태로 만들고, 새 둥지 속 어미 새처럼 자리합니다. 이 습관은 십오 년 전 즈음인가 샌프란시스코 여행에서 시작됐습니다. 동행인이 자는 동안, 빛이 새어 나가지 않게 책 읽을 공간을 찾다 우연히 욕조 안에 앉았습니다. 차라리 밖으로 나가는 게 낫지 않느냐 할 수 있지만, 호텔 방 욕조 속은 더 사적이고 비밀스러운 대체불가의 혼자만의 공간입니다. 그렇게 새로운 도시에서 밤마다 둥지를 틀고 책을 읽습니다. 에든버러는 오후 네 시가 넘으면 어둑어둑하고, 한국과 9시간의 차가 있으니 길어진 밤이 시간을 번 기분입니다.

오늘은 마음먹고 올해를 돌아볼 예정입니다. 아쉬움은 아쉬운 대로, 용기 냈던 순간도 한 번 더 격려하며 흘려보낼 생각입니다. 여행지에서도 에너지를 채우는 것은 결국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