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14


‘화가 나는데 기뻐’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이 한 마디에 마음이 놓였습니다. 한동안 친구는 기쁘지도 슬프지도 화가 나지도 않았습니다. 하고 싶은 일도, 먹고 싶은 무엇도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내가 사무실 흰 벽에 걸린 시계의 바늘 같아. 기계적으로 반응하고 그저 그런 매일과 같은 날을 반복하고 있지.’ 직장인으로 맞는 열다섯 번째의 봄은 무기력했습니다. 친구는 잠시 쉼을 택했고, 사계절이 지나 다시 맞은 올봄은 적어도 자극에 대한 반응이 조금씩 살아난 것 같다며 화를 내고 있는 자신이 너무나 좋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감정’은 알고 싶은 영역입니다. 감정들을 미묘하게 나누기 시작하면 끝이 없겠죠. 셀 수 없는 수많은 감정을, 나의 감각과 욕구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면… 아마도 이것이 고대 철학자들도 현대의 우리도 꿈꾸는 이상일 겁니다. 그런데 애정 하는 이의 무기력하다는 말은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것 같아 안타까웠는데 젖은 솜뭉치처럼 축 늘어졌던 그녀가 조금씩 가벼워지고 있다는 말에 냉큼 아리스토텔레스의 이 문장을 기록합니다.


[온화함은 노여움과 관계된 중용이다…당연히 노여워해야 할 일에 대해서, 당연히 노여워해야 할 사람에게, 적당하게, 적절한 때에, 적당한 시간 동안 노여워하는 사람은 칭찬받는다. 이런 사람이 온화한 사람이요, 그의 온화함은 칭찬을 받는다.온화한 사람은 쉽사리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며, 감정에 좌우되지 않고, 순리에 따라 옳은 태도로 노여워해야 할 일에 적당한 시간 동안만 노여워한다.]


마땅히 화를 내야 할 때 내지 않는 사람은 어찌 보면 자기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전하는 아리스토텔레스. 마땅한 사람들에 대하여, 마땅한 동기로, 마땅한 태도로 행동하는 것. 중용은 연습과 실천을 통해 가능한 것이기에 살아가는 감각들을 삼키기만 하지 말고 마땅히 그리고 적당히 표현하며 살아가자고 기록하는 아침입니다.


참고자료: 니코마코스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홍석영 풀어씀. 풀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