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16

‘초연하다’는 표현을 좋아합니다. 어떤 현실 속에서 벗어나 그 현실에 아랑곳하지 않고 의젓하다. 보통 수준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의미로 사전은 풀이합니다. 자기 자신에게서 떨어져 나와 거리를 둔 채 부드럽지만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자신을 스스로 바라보는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영어로는 aloof. 항해와 관련된 어원으로 해변에서 멀어져 바람으로 들어가는 배를 뜻합니다. 육지와 멀어져가는 배를 상상하듯 ‘거리를 둔’심리적 상황에 초연하다는 표현은 자주 등장합니다. 누군가는 이 거리감을 체념 혹은 타인에게(신에게) 맡겨버리는 수동적인 모습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더 넓은 수용의 표현으로 수백 년 전에도 현대에도 철학자의 문장에는 ‘초연함’이란 표현이 종종 등장합니다.

-초연함은 자신감의 우아한 표현 양식이다. Marie von Ebner-Eschenbach

-내가 누리는 자유는 꾸밈없고 다른 일에 초연했으며, 강렬했기 때문에 나는 위선자라는 의혹을 떨칠 수 있었다. 아무리 불안하고 힘들더라도 사람들에게 감추지 않고 이야기했으며, 그들이 없을 때도 그들에 대해 더 심한 말은 하지 않았다. 나는 행동할 때, 행동 자체 외에 다른 결과는 기대하지 않으며 그 후의 일과 결부시키지도 않는다. Montaigne

-싹이 피어나 잘 여물어 결실을 거둘 때까지 그저 초연히 기다리는 그런 농부와 같이, 사유는 그렇게 기다릴 수밖에 없다. Martin Heidegger

특히 마틴 하이데거는 진정한 사유의 길에 들어서는 열쇠를 초연한 내맡김(Gelassenheit)으로 설명하며, 초연할 때 얻을 수 있는 고요함 속 능동적인 움직임이 살아가는 데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많은 이들은 꿈꿉니다. 팽팽하게 부풀어 올라 터져버릴 것 같은 감정에 휩싸인 자신에게서, 심장이 터질 듯 사랑하는 마음이 커진 상황에서도, 들여다볼수록 나도 모르게 집착하게 되는 세상에서 잠시 떨어져 현명한 자기 스스로를 원합니다. 초연함. 쉽지 않기에 열망합니다. 나를 굳건히 세우는 연습. 초연함에 대한 생각으로 오늘 하루를 시작합니다.